[▩]문기득의 세상이야기][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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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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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이꽃

얼마 전 강남에 있는 결혼 예식장에 갔다. 시간이 없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청첩장을 보여주고 가자고 했더니 잘 모르는 눈치였다. 다행히 주소가 있어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왜 이렇게 예식장 이름이 어렵냐고 한다. 나도 처음에 예식장을 보고 성당이나 교회인 줄 알았다. ‘더채플앳ㅇㅇ강남에 있는 예식장이라 이렇게 지었을까? 예식장 이름을 이렇게 지어야 뭔가 고급스럽고 품위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강남이라는 지역적인 수준에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디 결혼 예식장 이름뿐이겠는가? 아파트 이름도 외국어로 도배한지 오래다. ~팰리스, ~캐슬, ~파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시골에서 시부모님이 서울 집 찾기 어려우라고 그렇게 짓는다는 농담을 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분별없는 외국어 남용이 심각하다. 쇼핑, 쇼핑 가이드, 팡파르, 블랙 박스, 하이라이트, 뉴스 파일, 모닝 와이드 등

귀이천목(貴耳賤目)이라는 말이 있다. 귀로 들은 소문은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은 천하게 여긴다는 말인데 요즘 우리의 언어 사용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의식구조가 서구의 것은 무조건 좋고 우리 것은 별로라는 자기부정의 생각이 우리의 의식저변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말이나 우리의 전통을 하찮게 여기고 우리의 말을 살려 쓰겠다는 노력없이 그릇된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우리말을 천시하고 외국어를 남용하면서 그것이 지식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듯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일제 강점기 '조선말 큰사전' 편찬의 주역이었던 이극로 박사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라고 역설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과 글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과 그것을 바탕으로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천박한 공명심과 맹목적인 서구 우월주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꽃이 코스모스다. 코스모스의 순우리말 이름이 살살이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살살이'란 가냘프면서도 곱다는 말로 가늘고 약한 몸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뜻이다. 살살이꽃은 원산지가 멕시코여서 원래 우리말은 없었지만 이렇게 잘 표현하여 우리말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살살이꽃이 다 지기 전에 가까운 야외에 나가서 가을 끝자락의 정취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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